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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드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by 마음의 집중 202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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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엘링 홀란드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p/C4WDDbxJe2F/

 

 

노르웨이산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드는 사실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될 뻔 했습니다 그는 영국 리즈에서 태어났는데요. 홀란드의 아버지가 리즈 유나이티드의 선수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죠 아빠 알프 잉에 홀란드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유명한 축구 선수 였습니다 노팅엄 리즈 유나이티드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을 하였죠.

 

맨유의 레전드린 로이킨의 살인태글의 피해자가 바로 홀란드의 아버지 입니다 홀란드의 아빠는 로이킨과 앙숙으로 유명했는데 그가 맨처스터 시티에서 뛰던 시절 맨체스터 더비에서 로이킨에게 오른쪽 무릎을 강하게 가격당하여 재활을 했지만 기존의 문제가 있었던 왼쪽 무릎마져 말썽을 일으키며 결국 은퇴를 결정하게 됩니다.

 

만약 홀란드의 아버지가 쭉 잉글랜드에서 뛰었다면 홀란드도 자연스럽게 잉글랜드 국적을 얻어 향 후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른 은퇴로 노르웨이 국적으로 그는 자신이 노르웨이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게 홀란드 가족은 노르웨이 남서부 브뤼네라는 하는 작은 마을로 돌아가게 됩니다. 홀란드의 엄마는 육상 7종 경기 노르웨이 챔피언이였습니다 운동선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홀란드는 엄청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죠 육상,골프, 핸드볼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5살때는 제자리 멀리뛰기에서 동 나이때 세계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런 홀란드가 축구를 자신의 진로로 선택하게 된것은 그의 우상이였던 아버지 알프 잉에 홀란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홀란드는 자신의 지역팀인 브뤼네 FK 유스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에는 노르웨이의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실내 구장이 있었으며 어린 홀란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그곳에서 3~4시간씩 축구를 하면서 보냈고 그렇게 축구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갔습니다.

출처_엘링 홀란드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p/C4WDDbxJe2F/

 

수비수로 활약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에링 홀란드는 공격에 큰 재능을 보였습니다. 홀란드으의 축구 실력은 또래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월반을 해서 형들과 함께 뛰었다고 하는데요 형들과 체격에 밀림에도 끊임없이 골을 넣었다고 합니다 15살에는 브뤼네 FK의 리버즈 팀으로 뛰면서 프로에 데뷔하게 되는데 14경기에서 18골을 넣으며 활약 하게 됩니다 그 다음 해에는 1군 팀에 콜업되면서 진정한 성인 무대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홀란드는 래퍼로도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도 찍어서 SNS에 올렸다고 합니다.

 

홀란드는 원래 윙어으로 기용되었는데 정말 빨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홀란드가 중앙으로 뛰길 원하면서 현재의 포지션인 중앙 공격수로 뛰고 있습니다 프로 무대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잠재력을 뽐냈고, 홀란드는 자신을 한 단계 진화시켜줄 노르웨이 1부 리그 몰데FK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 팀은 맨유의 레전드 공격수 올레 군나르 솔샤르를 배출한 노르웨이의 명문 축구팀이였습니다. 그리고 솔샤르가 자신의 친정팀을 이끌고 있었죠 노르우[ㅔ이 최고의 공격수였던 그는 홀란드에게 공격수가 어떻게 경기를 지배하는지 알려주었고 당시 홀란드의 약점 이였던 헤더를 개선시키기 위해 2년 동안 헤더 연습을 지속적으로 시킵니다 이는 훗날 홀란드의 다양한 공격 옵션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죠.

 

하지만 홀란드에게도 하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키는 쑥쑥 자랐지만 깡 마른 체격 때문에 프로무대에서 통할지 의문이 존재 했지만 이 시기에 홀란드는 몰데에서 또 다른 조력자를 만납니다 홀란드가 이모라 부르는 몰데FK의 셰프가 홀란드의 고민을 해결해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솔샤르의 지시아래 홀란드의 영양상태와 훈련 강도에 맞춰 그가 성장에 필요한 최대한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하죠.

 

이모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홀란드는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훈련이 끝나고도 집에 가져가겠다고 음식을 싸 달라고 요청한 적도 많다고 합니다. 이모의 도움으로 몰데의 2년동안 홀란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온몸의 성장통이 있을 정도로 크고 있다는걸 느꼈다고 합니다. 홀란드는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이모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스포츠 갈라에서 상을 탔을 때 수상소감을 통해 이모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녀에게 유니폼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홀란드는 자신의 피지컬을 극복하고 거기에 타고난 축구 지능까지 결합되자 완성형 축구선수가 되어 갔습니다. 홀란드는 당시 리그 1위팀 브란을 상대로 4골을 집어 넣었고 화려하게 이름을 날렸고 리그에서만 25경기 12골을 집어넣으며 유럽 축구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습니다.

 

당시 홀란드는 아버지의 친정팀이자 자신의 고향팀 리즈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많은 유럽 팀들의 오퍼를 받았지만 홀란드 부자가 선택한 팀은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였습니다 잘츠부르크는 16살때부터 홀란드를 지켜봐왔고 어린 선수가 가지고 있는 프로의식과 승부에 대한 집착을 높이 샀다고 합니다 또 홀란드의 축구 커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그를 강력히 설득하였습니다

 

그렇게 홀란드는 그들의 비전에 깊은 인상을 받아 2018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잘츠부르크에 이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적 후 초반에는 당시 주전 공격수 모아네스 바루스의 존재로 인해 많은 출전 시간을 보장 받지 못했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얻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그 이유는 다부르가 세비아로 이적하면서 홀란드가 주전 공격수로 기용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출처_엘링 홀란드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p/C4WDDbxJe2F/

 

잘츠부르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홀란드는 노르웨이의 대표팀에 합류하여 U-20 폴란드 월드컵에 참가하게 됩니다. 홀란드는 온두라스전에서 무려 아홉 골을 폭격하며 12:0으로 팀을 승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노르웨이 팀의 부진으로 대회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 홀란드는 대회 득점왕 이라는 골든 부츠를 타는 해프닝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U-20의 물이 오른 폼 때문인지 시즌이 시작되고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에서 헹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대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 경기를 마치고 홀란드의 가족들은 승리를 축하 하기 위해 술을 마시러 가자고 권 했지만 홀란드는 이를 거절하며 늦음 밤 클럽 루틴대로 회복운동을 해야 한다며 트레이닝 센터로 들어갔습니다. 이 일화는 홀란드가 얼마나 프로페셔널한지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팀 동료였던 막시밀리안 뵈버 선수 또한 그의 프로페셔널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었는데요 팀 동료들끼리 카드를 치고 있으면 홀란드는 수면을 취하거나 식습관을 향상시킬수 있는 기사 같은 걸 찾아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홀란드를 만든건 이런 사소한 디테일한 자기관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홀란드는 챔피언스 리그 총 여섯 경기에서 8골을 포함 시즌 22경기에서 28골을 기록하며 유럽 상위 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따는 믿음을 빅클럽의 스카우터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즌이 바로 그 유명한 홀란드, 황희찬, 미나미노로 이어지만 잘츠부르크에 매서운 공격라인이였죠.

 

출처_엘링 홀란드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p/C4WDDbxJe2F/

 

엄청난 시즌을 보낸 홀란드에게 빅 클럽의 오퍼는 당연해 보였고,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 했는데요. 몰데 FK 시절 스승인 솔샤르가 지취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호날두가 뛰던 유벤투스, 그리고 도르트문트가 있었습니다. 홀란드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팀이였는데요 그 곳은 바로 도르트문트였습니다. 

 

그렇게 홀란드는 2000천만 유로에 분데스리가의 명문구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이적하게 됩니다. 2020년 1월 18일 홀란드는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후반 586분 교체되며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3분만에 데뷔골에 그 경기 헤트트릭까지 기록하며 그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하게 됩니다.

 

출처_엘링 홀란드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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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경기는 퀼튼전 그 경기에서도 교체로 출전하며 2골을 기록하며 단 2경기 만에 그것도 교체 출전으로 5골을 기록하게 됩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서는 파리 생제르망을 상대로 멀티골을 넣으며 자신이 최고의 골잡이로 증명하게 되죠 그 다음 시즌에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41경기에서 41골 10도움이라는 엄청난 공격 포인트 생산 능력을 보이며 분데스리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 됩니다. 불과 한 시즌 반만에 그는 분데스리가를 정복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분데스리가 정복을 마친 홀란드의 다음 행선지에 대해 궁금증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홀란드의 다음 행선지는 모두가 다 아는 맨체스터 시티 였습니다. 맨시티는 그 당시 공격수 아구에로와 작별하며 스트라이커 부재를 겪고 있었고 헤리 케인마저 영입에 실패하면서 적임자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맨시티에게 마지막 퍼즐을 같았던 선수가 바로 홀란드 였고 결국 홀란드는 2022년 6월 맨시티로 이적하게 됩니다 아버지 알프 잉에 홀란드에 이어 22년 만에 아들 엘링 홀란드가 대를 이어 맨시티와 동행하게 된 것이죠 홀란드는 맨시티가 찾던 마지막 퍼즐이 맞았을까요 홀란드의 맨시티 공식 데뷔전은 리버풀과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였습니다. 항상 리그 선수를 다투는 리버풀과의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홀란드는 평소와 같지 않은 아쉬운 골 결정력과 경기 내내 팀원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부진했죠 하지만 홀란드는 걱정은 하는게 아닌것인지 리그가 시작되자 그를 막을 수 있는 선수와 팀은 없었습니다 리그 1라운드 웨스트햄전에서 멀티골, 4라운드 크리스탈 펠리스전에서 해트트릭 노팅엄 포레스트전에서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 그렇게 6경기만에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했습니다.

 

그렇게 홀란드는 프리미어리그 데뷔 첫 시즌 만에 프리미어리그 단일 시즌 최다 득점 프리미어리그 최소 세 경기 연속 해트트릭 선수 프리미어리그 데뷔 후 첫 열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이미 프리미어그에서 뛰었던 선수처럼 적응을 했습니다. 이런 홀란드의 활약으로 리그 우승, FA컵 우승, 챔스 우승 이라는 프리미어그리 역대 2번째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역사에 기록 될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출처_엘링 홀란드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p/C4WDDbxJe2F/

 

기록이 그 선수의 모든 가치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라이커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바로 어떤 상황에서는 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겟죠 그런 의미에서 홀란드의 엄청난 득점 생산능력은 비교할 만한 선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상을 달리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시작해서 오스트리아, 독일 마지막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죠 괴물 같은 피지컬뿐만 아니라 홀란드의 자기관리와 프로의식은 그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의 명상 세러머니에서 볼 수 있듯이 홀란드는 멘탈 관리와 휴식,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앞으로 홀란드가 어떤 기록과 업적을 이뤄낼 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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